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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숲에서 2편 – Tune up! <노르웨이의 숲>이 들리는 트랙리스트

무라카미 하루키의 숲에서 1편 – <노르웨이의 숲>을 둘러싼 제목 잔혹사 편에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숲에서 2편 – Tune up! <노르웨이의 숲>이 들리는 트랙리스트

 

숲에서 나온 트랙리스트

섬네일 :

혼자서 책을 읽는 시간,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함께 듣곤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읽고 있는 책에 맞는 음악을 찾아서 플레이어 안의 폴더를 이것저것 뒤져 보게 마련. <햄릿>을 읽으면서 심수봉을,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메탈리카를 듣는다면 그야 특별한 경험이 되겠지만 집중해서 책을 읽기는 어려울 테니까. 그러나 <노르웨이의 숲>을 펼친 독자라면, 뭘 들을까 하는 고민이 필요 없을 것이다. ‘책과 같이 듣는 음악’에 있어, 어떤 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친절하니 말이다. 제목부터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온 이 작품은, 줄잡아 40여 곡이 넘는 곡의 제목이 작품에 등장하니 그 곡들만 뽑아서 들어도 책을 읽는 시간을 꽉 채워주지 않을까.

1960년대 말, 일본 대학가를 휩쓴 전공투 운동과 그에 따라 시대를 풍미한 카운터컬처와 히피 공동체적 분위기를 떠올리는 올드팝 레퍼토리에서부터 재즈 카페 경영인이었던 작가의 경력을 떠올리게 하는 스탠더드 재즈곡, 그리고 감상적인 프랑스 인상파 피아노곡까지. 재즈 마니아이자 클래식에서 포크송까지 다양한 분야의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독자를 위해 선정한 추천곡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노르웨이의 숲>에 인용된 곡들은 작품의 분위기를 그대로 설명하면서도 그 자체로 굉장히 좋은 넘버들이다.

<노르웨이의 숲>을 설명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음악, 그 모든 음악을 등장 장면과 함께 만나보자. 등장 순서로 만든 트랙리스트라서 따라가는 재미가 클 것이다. 자, 뮤직 스타트!

Track 001
“비행기가 멈춰 서자 금연 사인이 꺼지고 천장 스피커에서 나지막이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느 오케스트라가 감미롭게 연주하는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늘 그랬듯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마구 뒤흔들어 놓았다.

Track 002
크리스마스 때 나는 나오코에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어 하트(Dear Heart)」 가 든 헨리 맨시니의 레코드를 선물했다. 손수 포장해서 빨간 리본을 달았다.

Track 003
나는 애써 콘서트 초대권을 두 장 마련해서 나오코를 초대했다. 나오코가 아주 좋아하는 브람스의 교향곡 4번 연주라서 그녀는 그날을 잔뜩 기대했다.

Track 004
레코드는 모두 여섯 장뿐이었고, 그 순환의 처음은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이고 마지막은 빌 에번스의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 였다.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나오코는 혼자서 말을 이어 갔다.

Track 005
나는 어두컴컴한 아래층으로 내려가 열 송이의 하얀 수선화를 들고 돌아왔다. 미도리는 찬장에서 가늘고 긴 유리잔을 꺼내 거기에 수선화를 꽂았다.
“나 수선화 정말 좋아해. 옛날 고등학교 축제 때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ls)」를 부른 적이 있어. 알아, 「일곱 송이 수선화」?”
“알지, 물론.”

Track 006
그녀는 옛날에 유행한 포크송을 불렀다. 노래도 기타도 빈말이라도 잘한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본인은 아주 즐거운 듯했다. 그녀는 「레몬 트리(Lemon Tree)」, 「퍼프(Puff)」, 「500마일(500miles)」, 「꽃들은 어디로 갔을까?(Where Have All Flowers Gone?)」, 「노 저어라 마이클(Michael, Row the Boat)」 같은 노래를 하나하나 불러 갔다. 처음에 미도리는 나에게 저음 파트를 가르쳐 주고 둘이서 합창하려 했지만 내 노래가 너무
하다 싶을 만큼 엉터리라는 걸 알고는 체념한 듯, 혼자서 끝도 없이 노래했다.

Track 007
“리퀘스트 타임.” 레이코 씨는 한쪽 눈을 가늘게 뜨고 나에게 말했다. “나오코가 오고부터 날이면 날마다 비틀스를 쳐야 해. 꼭 불쌍한 음악 노예처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셸(Michelle)」을 아주 멋들어지게 쳤다.
“참 좋은 곡이야. 나, 이거 정말 좋아해.” 레이코 씨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마치 아주 넓은 초원에 부드럽게 비가 내리는 것 같은 곡.”
그다음 그녀는 「노웨어 맨(Nowhere Man)」을 치고, 「줄리아(Julia)」를 쳤다. 때로 기타를 치면서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다.

Track 008
“그 애가 악보를 가져오더니 한번 쳐 봐도 되겠느냐는 거야. 괜찮다고, 쳐 보라고 했지. 그러자 그 애는 바흐의 「인벤션(Inventionen)」을 쳤어. 그런데, 그게 꽤 재미있는 연주였어. 재미있다고 할까 참 이상하다고 할까, 분명히 평범하지는 않았어.”

Track 009
레이코 씨는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를 휘파람으로 노래하며 쓰레기를 모아 비닐봉지에 넣고 주둥이를 묶었다. 나는 청소 도구와 모이 봉지를 창고로 나르는 일을 도왔다.
“난 아침이 제일 좋아. 모든 게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것 같으니까. 그래서 점심시간이 오면 슬퍼져. 저녁이 가장 싫어. 하루하루 그런 느낌으로 살아가.”

Track 010
나오코와 레이코 씨는 찬 우유를, 나는 맥주를 시켰다. 레이코 씨는 여자애에게 FM 방송을 틀어 달라고 했다. 여자애가 앰프를 켜고 FM 방송에 채널을 맞추었다. 블러드 스웨트 앤드 티어스가 「스피닝 휠(Spinning Wheel)」을 불렀다.
“사실은 FM 방송이 듣고 싶어 여기 와.” 레이코 씨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한테는 라디오도 없으니까 가끔 여기라도 오지 않으면 요즘 세상에 어떤 음악이 유행하는지도 몰라.”

Track 011
“자기가 가 버리면 정말 쓸쓸할 거야.” 레이코 씨가 말했다.
“내년 5월이면 다시 오니까요.” 하고 여자애는 웃으면서 말했다.
크림의 「화이트 룸(White Room)」이 흘러나오고, 광고가 흘러나오고, 그다음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스카버러 페어(Scaborough Fair)」가 흘러나왔다.

Track 012
가게 여자애가 혹시 비틀스의 「히어 컴스 더 선(Here Comes the Sun)」을 연주해 준다면 우유를 가게에서 대접한 걸로 하겠다고 했다. 레이코 씨는 엄지를 세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러고는 가사를 읊으며 「히어 컴스 더 선」을 쳤다. 성량도 적고 담배를 많이 피운 탓인지 조금 갈라져 나왔지만 존재감이 드러나는 멋진 목소리였다.

Track 013
우리가 커피숍에 돌아온 것은 3시 조금 못 미쳐서였다. 레이코 씨는 책을 읽으면서 FM 방송으로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고 있었다.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초원의 끝에서 브람스가 울려 퍼지는 것도 꽤 멋진 일이었다. 3악장의 첼로
멜로디를 그녀는 휘파람으로 따라 했다.
“바크하우스와 뵘.” 그녀가 말했다. “옛날에 이 레코드를 닳아 버릴 만큼 들었지. 정말 닳아 버리기도 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었어.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다 핥듯이.”

Track 014
비는 계속 내렸다. 때로 천둥 번개도 쳤다. 포도를 다 먹은 다음 레이코 씨는 아니나 다를까 담배에 불을 붙이고, 침대 아래서 기타를 꺼내 치기 시작했다. 「데사피나도(Desafinado)」와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Girl from Ipanema)」를 치고, 그런 다음 배커랙의 곡과 레넌, 매카트니의 곡을 쳤다.

Track 015
흐린 핑크 립스틱을 바른, 어디를 보나 중학생인 듯한 여자애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롤링 스톤스의 「점핑 잭 플래시( Jumpin’ Jack Flash)」를 좀 틀어 주겠느냐고 했다. 내가 레코드를 들고 와 틀자 그녀는 손가락을 퉁기며 리듬을 타고 허리까지 흔들며 춤을 추었다. 그러더니 담배 한 대를 줄 수 없느냐고 했다. 나는 점장이 두고 간 라크 한 개비를 뽑아 줬다. 여자애는 그걸 맛있게 피우더니 음악이 끝나자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나가 버렸다

Track 016
미도리는 카운터에 팔꿈치를 대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짐 모리슨 노래에 아마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
“People are strange when you’re a stranger.(네가 낯선 이일 때 사람들이 낯설어져.)”
“피스.”
“피스.”

Track 017
나는 말없이 텔로니어스 멍크가 연주하는 「허니서클 로즈(Honeysukle Rose)」를 들었
다. 가게 안에는 우리 말고도 대여섯 명이 있었지만, 술을 마시는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매혹적인 커피 향이 어두컴컴한 실내에 오후의 따스한 공기를 불어넣었다.

Track 018
책상 앞에 앉아 「카인드 오브 블루(Kind of Blue)」를 오토리버스로 몇 번이나 들으면서 비 내리는 정원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어. 지난번에도 썼듯이 난 일요일에는 태엽을 감지 않거든.

Track 019
생각해 보니 기타를 손에 잡은 것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이었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옛날에 연습한 드리프터스의 「업 온 더 루프(Up on the Roof)」를 떠올리며 천천히 쳐 보았다. 신기하게도 아직 코드를 제대로 기억했다.

Track 020
그는 나를 한 번 자기 집에 초대했다. 이노카시라 공원 뒤편에 있는 조금 특이하게 지은 1층 연립 주택이었는데, 방 안은 그림 재료와 캔버스로 가득했다. 그림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부끄럽다면서 보여 주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아버지한테서 슬쩍한 시바스 리갈을 마시고 풍로에 시샤모를 구워 먹고, 로베르 카자드쥐가 연주하는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트를 들었다.

Track 021
레이코 씨는 비틀스로 옮겨 가서 「노르웨이의 숲」을 치고, 「예스터데이(Yesterday)」를 치고, 「미셸」을 치고, 「섬싱(Something)」을 치고, 「히어 컴스 더 선」을 노래하면서 치고, 「풀 온 더 힐(The Fool on the Hill)」을 쳤다. 나는 성냥개비를 일곱 개 늘어놓았다.
“일곱 곡.” 레이코 씨는 와인을 마신 다음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이 사람들, 인생의 아픔이라든지 상냥함 같은 걸 잘 아는 거야.” 이 사람들이란 물론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 그리고 조지 해리슨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녀는 한숨을 돌리고 담배를 끈 다음 기타를 들고, 「페니 레인(Penny Lane)」을 치고, 「블랙 버드(Black Bird)」를 치고, 「줄리아」를 치고, 「웬 아임 식스티 포(When I’m Sixty-Four)」를 치고, 「노웨어 맨」을 치고, 「앤드 아이 러브 허(And I Love Her)」를 치고, 「헤이 주드(Hey Jude)」를 쳤다.
“이것까지 몇 곡?”
“열네 곡.”

Track 022
그다음 레이코 씨는 기타용으로 편곡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Pavane pour une infante defunte)」과 드뷔시의 「달빛(Clair de Lune)」을 아름답고 정중하게 연주했다.
“이 두 곡은 나오코가 죽은 다음에 마스터한 거야. 그 애 음악 취향은 마지막까지 센티멘털리즘의 지평에서 벗어나지 않았어.”

Track 023
그녀는 배커랙을 몇 곡 연주했다. 「클로스 투 유(Close to You)」, 「비에 젖어도(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 「워크 온 바이(Walk on by)」, 「웨딩 벨 블루스(Wedding Bell Blues)」.
“스무 곡.”
“꼭 인간 주크 박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이야.” 레이코 씨는 즐거운 듯이 말했다. “음대 다닐 때 선생님이 이런 모습을 본다면 기절초풍하겠지.”

Track 024
그녀는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하나하나 아는 곡을 연주해 갔다. 보사노바를 열 곡 가까이 치고, 로저스 앤드 하트와 거슈윈의 곡을 치고, 밥 딜런과 레이 찰스와 캐롤 킹, 비치 보이스, 스티비 원더, 「위를 보고 걸어라(上を向いて步こう)」, 「블루 벨벳(Blue Velvet)」, 「그린 필드(Green Field)」까지 온갖 곡을 다 쳤다. 때로 눈을 감기도 하고 가볍게 고개를 젓기도 하고, 멜로디에 맞춰 허밍을 하기도 했다.
와인이 다 떨어지자 우리는 위스키를 마셨다. 나는 정원에 놓아둔 잔 속 와인을 등롱에 뿌리고서 잔을 위스키로 채웠다.
“지금 이걸로 몇 곡?”
“마흔여덟.”
레이코 씨는 마흔아홉 곡째 「엘레너 릭비(Elenor Rigby)」를 치고, 쉰 곡째 다시 한 번 「노르웨이의 숲」을 쳤다. 쉰 곡을 치고 나자 레이코 씨는 손을 내려놓고 위스키를 마셨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
“충분해요. 정말 대단하네요.”
“잘 들어, 와타나베. 쓸쓸한 장례식에 관한 건 깨끗이 잊는 거야.” 레이코 씨는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 장례식만 기억해. 멋지지?”

‘무라카미 하루키 최초의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평이 따라 붙는 <노르웨이의 숲>은 책장마다 새겨진 한 소절의 멜로디, 한때의 거리 풍경, 한 모금의 담배 연기까지 모두 1960년대를 추억하게 하는 코드들로 짜여 있다. 한쪽에서는 짐 모리슨의 허무한 음성이, 또 한쪽에서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현학적인 선율이 흐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젊은 날. 때로는 수많은 묘사보다 짧은 노래가 더욱 눈앞에 생생한 추억을 불러오는 법이다.
한 손에는 차게 식힌 맥주 캔을, 다른 손에는 하루키를 들고 이 트랙리스트를 따라가보면 어떨까. 우리의 젊은 시절을 장식한(혹은 장식할) BGM은 과연 무엇인지 자신의 트랙리스트와 비교해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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