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rakami Haruki Archive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리뷰북 독자 원고 공모 당선작 2.

색채가 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가 신작을 펴낸 해

고봉민

 

하루키가 재미있는 변화구를 던졌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통해 돌아온 그는 전작인 『1Q84』보다 진중하게 가벼워지고 색감 짙게 투명해진 듯하다. 환상과 병치시키던 관념적인 두 세계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길게 이어진 하나의 세계를 세심히 해부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시원한 맥주 한 잔 생각나게 만드는 하루키만의 세련된 필치는 여전하다. 문체에 MSG라도 집어넣는 기술이 있는 건지 모든 문장이 기막힌 맛을 낸다.
이 소설은 우리 안의 미(未)성년이 어떻게 미(美)성년이 될 수 있는지의 여정을 보여 주는 하루키식 성장기다. 그동안 많은 전작들에서 흥미진진한 ‘탐험’을 했던 것과 다르게 이번 소설에서 그는 ‘순례’라는 다소 성스러운 단어를 선택했다. 주인공 쓰쿠루의 순례란, 과거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찾아가 그 일의 의미를 확정 짓고 잘 떠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驛舍)를 만드는(作=쓰쿠루) 일을 하는 그의 직업이 표상하듯, 개인의 역사(歷史)를 만드는(作=쓰쿠루) 순간들의 필요성과 유의미함을 강조하려는 하루키의 의도가 엿보인다. 하나의 역에 머물렀다 지나가는 열차들이 저마다 다양한 선로를 가지고 있듯이, 인간의 기억 또한 다양한 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루키는 쓰쿠루의 순례를 통해, 우리 개개인의 삶이 그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연대로 촘촘히 흘러가는 역사라고 이야기한다.

이름에 다양한 색채(적, 청, 백, 흑)를 지니고 있던 친구들이 색채가 없는 쓰쿠루(作)에게 돌연 절교를 선언하는 일로 이야기는 출발한다. 순수한 십대 시절, 단 한 번뿐인 완벽한 케미스트리를 형성했던 네 친구들은 왜 쓰쿠루를 버려야만 했을까. 우리 인생에서 날 때부터 색채, 즉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다는 것과 그 색채를 잃어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우리를 상처 입힌 이런저런 사건들에서 진정한 가해자는 누구이며 피해자는 누구였을까. 어떤 사건 이후, 살아감의 동력을 잃고 언제나 죽음을 생각했던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삶으로 돌아올 힘을 낼 수 있을까. 소설은 이렇게 다양한 의문을 독자에게 제기하며 흥미진진하게 과거의 진실을 찾아 길을 나선다. 누구에게나,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했던 과거의 사건들이 있다. 이미 지나가 버렸으므로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그것들을 우리는 흔히 ‘역사’라고 부른다. 누구나 역사에 무심해지기는 쉽지만 누구도 역사와 무관해지기는 어렵다. 나비 효과처럼, 지나간 역사는 지나간 줄만 알았던 바로 그 장소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현재를 간섭하고 압박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너무 오래되어 스스로가 치유 불가능한 것이라 여기고 의식의 밀실에 가둬 버린 무의식이 우리 내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무의식과 성장이라는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불화한 과거의 기억과 정면으로 대면하는 용기만이 결국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 주는 힘이며, 끝내 틀어져 버린 과거라 해서 그때의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하루키는 우리의 등을 두드리며 말한다. 그러니 힘들겠지만 그때의 자신으로 돌아가, 자기 상처의 의미를 잘 들여다보고 다시 용기 있게 현실로 돌아오라고.

이 책을 읽고 나니 문득 초등학교 자연 시간에 배운 전기 회로 연결 방식이 떠올랐다. 전기 회로의 병렬연결에서는 한 도선의 흐름이 끊어져도 다른 회로끼리는 전류가 흐를 수 있다. 마치 어느 한 시절에 상처 받아 마음의 흐름을 차단한다 해도, 우리가 끝끝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은 엄연한 것처럼 말이다. 또한 병렬연결에서는 아무리 많은 전지를 연결한다 하더라도 전압은 전지가 한 개일 때와 같다. 살아가면서 아무리 많은 새로운 기억을 더한다 해도 우리가 처음으로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한 시절의 역사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전압으로 일평생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루키의 말마따나 ‘기억은 지울 수 있어도 역사는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마저도 잘 간직할 줄 아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닐까. 이렇게 복잡한 병렬연결로 이어진 인간관계 속에서 저마다 자신만의 기억을 찾아가 자신만의 색을 만들어 가는(作) 일련의 여정은 그래서 꼭 필요한 삶의 절차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극복하면서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作) 있는 것이며, 바로 그것이 아무 색채도 없는 것처럼 평범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갈 만한 의미로 채색해 주는 동력은 아닐는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우리 삶이 상처 입은 유채색 기억들을 고스란히 비춰 내고 있는 한없이 투명한 거울이다. 쓰쿠루의 가슴 아픈 순례에 동참하는 동안, 나는 나 자신의 해묵은 상처와 맞대면하는 고통에 쓰라렸고 떠나온 누군가를 그리워했으며 다시 만난 그때의 나를 반가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직면의 힘으로 그때의 기억과 잘 헤어지고 돌아온 것도 같다. 끝을 잘 매듭지은 사람만이 아무런 미련 없이 새로운 시작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키의 이번 변화구는 삶의 정곡으로 날아와 아프게 우리의 허점을 찌르지만, 그 어떤 전작들보다 따뜻하고 다정한 속도로 가슴에 파고든다. 이 속 깊은 변화구를 그저 허방으로 쳐 낼 것인가, 가슴으로 꽉 안아 버릴 것인가는 순전히 독자 자신의 선택일 것이지만, 우리가 무슨 선택을 하든, 문학의 역사가 하루키를 올해의 승리 투수로 지목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올해가 아직 조금 남았지만, 올해 본 책 중에 가장 멋진 한 방이었다. 먼 훗날, 우리는 2013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색채가 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가 신작을 펴낸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