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rakami Haruki Archive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리뷰 인덱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리뷰 인덱스

 

 

1. 그에게서 다시 발견한 새롭고 뚜렷한 색채  by 박종호 (풍월당 대표)

단순한 대위법이나 명확한 화성학의 규칙에 매여 있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1Q84』가 마치 슈베르트나 브람스의 음악이라면, 그에 비해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현대적인 화성이나 불규칙한 악식법을 마음껏 활용하는 쇤베르크나 베베른을 연상시킨다. 그런 점에서는 좀 더 현재적인 작품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며, 형식을 지키려는 의도 대신에 좀 더 유연하고 무심하게 내던지는 맛이 느껴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전문 보기

 

2. 상처가 힘이 되기까지 ― 나와 너는 걷는다  by  임경선 (『나라는 여자』저자)

그런 순간의 절망감이 얼마나 차가운지 알기 때문인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소설을 더없이 따뜻하게 써 내려갔다. 단언컨대 작가의 지난 모든 소설 중, 이 소설은 가장 따뜻하다. 그토록 따뜻하게 차가운 현실을 짚어 준다. 그 어느 것도 결코 돌이킬 수는 없다고.  전문 보기

 

3. 또 하나의 상실의 시대에      by 정혜윤 (PD)

 미래의 우리 생명이 무엇인지를 결정지을 갈림길 앞에서 나온 소설, 심리적인 것을 그리려 했던 소설이 바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일까? 인간은 색채를 잃어 가고 사물은 점점 노골적인 색채와 광채를 띠는 이 찬란한 자본주의 시기에 쓰쿠루는 무엇을 위해 무슨 색을 찾아 순례를 떠나는가? 전문 보기

4. 마흔, 아직은 하루키가 필요한 나이   by 강유정 (영화평론가, 문학평론가)

『노르웨이의 숲』에서 비틀즈의 음악이 와타나베를 20대로 데려갔다면 『색채가 없는』에서 20대의 기억은 복귀가 아닌 완벽한 이별을 위해 호명된다. 20대를 불러오고 있지만 그것을 정리하는 방식은 정반대다. 그것은 “거의 죽음만을 생각하며 살았”던 『노르웨이의 숲』의 인물들, 그 서사와의 결별이기도 하다. 전문 보기

5. 다시 하루키를 읽는 시간   by 백영옥 (소설가)

나는 내가 그의 작품을 읽지 않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게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고 있었다. 이때의 ‘내게’는 작가인 나이며 ‘내가’는 독자인 나이다. 아마도 나는 카프카와 줌파 라히리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그러하듯 그들의 식성과 마라톤 스케줄을 꿰고 있진 않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이미 그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문 보기

6. 요나는, 그리고 쓰쿠루는 고독이 아닌 연대를 원한다  by 박수현 (번역가)

우리는 과거의 좋지 못했던 기억을 감추어 두고서는 마치 없었던 일처럼 살아간다. 기억을 감추어 둔 곳은 우물일 수도 서랍장일 수도, 일각수의 두개골일 수도 있다.(이러한 비유에 대해 하루키는 자기 안에 내재하는 이야기(또는 기억)를 꺼내는 작업이 그것들과 유사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하지만 사라의 말처럼 “기억을 어딘가에 잘 감추었다 해도, 깊은 곳에 잘 가라앉혔다 해도, 거기서 비롯한 역사를 지울 수는 없”(51쪽)다. 감추어 둔 기억을 꺼내서 상실과 결락을 메우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시간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전문 보기

7. 인생은 둘 다 필요로 한다  by 안천 (현대 일본 문학 연구자)

생각지 않았던 의외의 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루키 소설에서 과거와 현재가 이렇게까지 농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을까? E.H. 카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는 경구에 따르자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색채가 없는』)는 한 개인의 삶에서 ‘역사’가 현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기분 좋게 허를 찔렸다. 이게 두 번째 감상이다. 전문 보기

8.  죽음의 죽음 : 쓰쿠루(作)에서 쓰쿠루(創)로  by 허희(문학 평론가)

하루키의 책을 접하게 되면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편안하게 살기는 어려워진다. 평탄하게 살려고 하면 눈을 감고 귀를 막아야만 하는데, 그의 작품은 술과 음악으로 매혹하면서 자꾸 이것저것 보고 듣게 만든다. 그러고는 캐릭터에 몰입한 독자로 하여금 사랑과 이별을 거쳐 죽음과 방황을 겪게 한 뒤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의 장으로 이끌어 놓는다. 가히 하루키 소설의 서사 문법이라고 할 만한 일련의 경로를 체험하고 나면 도저히 예전의 생활로는 돌아갈 수가 없다.  전문 보기

9. 퇴색이 아닌 더 풍부한 색채를 꿈꾸며  by 박용완(월간객석 편집장)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 제목부터 난해한 소설을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스스로 얼마나 어른이 됐는지, 혹은 얼마나 다른 사람이 됐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상실과 고독 같은 고차원적인 감정을 넘어, 남의 사연에 얼마나 귀 기울여 주고 얼마나 동감할 수 있는지 혹은 보듬어 줄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전문 보기

 

10. 비틀스와 ‘노르웨이의 숲’  by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린 회상과 추억을 통해 지나간 ‘그 시대’를 되살려낸다. 하루키에겐 비틀스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비틀스의 음악이 언제든 라디오와 MP3를 통해 들려온다면, 어제의 시간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라고, 하루키는 비틀스를 통해 말하고 있다. 전문 보기

 

11.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어떻게 색채를 갖게 되었나  by 이현우(서평가)

그는 텅 빈 존재,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된다. 그는 엷게, 희미하게 존재한다. 무성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이 이 소설의 기본 설정이다. 하루키도 여기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이야기의 방향은 정해졌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어떻게 색채를 갖게 되었나.” 나머지 절반의 이야기는 하루키의 만드는(作. ‘쓰쿠루’의 한자) 솜씨를 음미하면서 당신이 읽어야 할 몫으로 남겨 놓는다.  전문 보기

12.  하루키, 이토록 필요한 작위의 세계 by 백지은(문학평론가)

도무지 저 멀리서부터 돌아서 오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멋쩍은 질문, 내가 나로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나의 육체가 이 세계에 (우연하게도) 물질적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우연적인 물질이 시간성을 통과하며 일관된 지속성으로 정의되어 이 세계에 좌표화 되어야 한다. 육체는 늙고 병들고 마침내 사라지는 방향으로 쉼 없이 가고 있는 허무한 것이나, 어찌된 연유인지 우리는 모두 열심히도 살고 있다. 전문보기

 

독자 리뷰

민음사 카페 리뷰 대회 독자 원고 당선작

1. 색과 음악이 함께 하며 삶의 가치를 찾는 여정  by 소백산맥

 우리는 쓰쿠루가 설계한 멋진 역을 만나 그 공간에서 자유로이 순례를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내가 있던 자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인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 보기

 

2.  색채가 튀는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가 신작을 펴낸 해  by 고봉민

하나의 역에 머물렀다 지나가는 열차들이 저마다 다양한 선로를 가지고 있듯이, 인간의 기억 또한 다양한 노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루키는 쓰쿠루의 순례를 통해, 우리 개개인의 삶이 그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의 연대로 촘촘히 흘러가는 역사라고 이야기한다.  전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