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rakami Haruki Archive

비틀스와 ‘노르웨이의 숲’

 

비틀스와 ‘노르웨이의 숲’

 

 김태훈 (팝 칼럼니스트)

 

비틀스는 하나의 상징이다. 적어도 무라카미 하루키에겐 그렇다. 그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 제목을 비틀스의 음악에서 빌려 왔다.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라고 ‘노골적’으로 이름 붙여진 작품은 그가 비틀스를 통해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기억하며, 읽어 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1989년,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노르웨이의 숲』 초판에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여기서 그려 내고 싶었던 것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동시에 하나의 시대를 감싸고 있었던 공기(空氣)라는 것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소설의 배경이자, 하루키가 그의 또 다른 많은 작품을 통해 첫사랑과도 같은 헌사를 바치고 있는 것은 1960년대의 어느 날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비틀스가 있었다.

 

소설의 첫 장은 독일 함부르크의 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 안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인 ‘나’는 착륙과 함께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비틀스의 「Norwegian Wood」를 기내 방송으로 들으며 기억 속의 과거를 떠올린다.

1964년 미국의 에드 설리번 쇼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가 된 비틀스이지만, 출발은 소박했다. 쇠락해 가던 영국의 항구 도시 리버풀 출신의 5인조 밴드(초기 비틀스는 실버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으며, 베이시스트 스튜어트 서드클리프를 포함한 5인조 편성이었다.)는 지역의 작은 클럽에서 데뷔했다. 그러나 야망으로 가득한 이들에게 첫 출발지였던 리버풀의 캐번 클럽은 너무 작은 무대였다. 당시 이들의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비틀스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함부르크의 클럽을 다음 행선지로 정한다. 미성년자였던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 때문에 짧은 활동 기간 후 다시 영국으로 쫓겨 오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얼마 후 조지 해리슨이 성년이 된 후 지체 없이 다시 함부르크로 밴드의 무대를 옮긴 것은 비틀스의 초기 역사에 기록된 유명한 일화이다. 말하자면 함부르크는 비틀스가 전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기 직전, 그들의 과거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다.

소설 『노르웨이의 숲』이 그 첫 장면을 함부르크에서의 회상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하루키는 주인공 ‘나’가 그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과거의 어느 시간으로 돌아가게 되는 장소로 비틀스의 출발점이었던 함부르크를 설정했다. 작품에 담은 그의 시대가 곧 비틀스라는 단어로 상징됨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후기에 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집필하기 위해 비틀스의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카세트 플레이어로 120회 이상 들었다고 썼다. 덧붙여 그는 가벼운 유머도 잃지 않았다.

“말하자면,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에게 이 소설을 쓰는 데 조금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그의 이야기처럼,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는 비틀스의 곡들이 가득 차 있다. 마치 소설의 배경이자, 자신의 시대에 대한 인장처럼 이들의 음악을 사용한다. 먼저 첫머리에 등장하는,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Norwegian Wood」부터 살펴보자. 노랫말의 의미상 정확히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닌, ‘노르웨이산 나무로 만든 가구’로 해석되는 「Norwegian Wood」는 비틀스 멤버들이 인도를 방문한 후, 철학자이자 명상가 라즈니쉬와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르에게 영향을 받은 곡이다. 이후 인도의 다신교에 빠지기고 했던 조지 해리슨이 팝 역사상 최초로 인도의 전통 악기 시타르 연주를 곡에 수록함으로 유명해졌다. 하루키와 소설속의 주인공 ‘나’가 살았던 196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는 반전과 평화의 구호들, 히피 운동과 대마초, 그리고 명상과 프리섹스의 시대였다. 예술가들은 약물과 명상을 통해 의식의 영역을 확장시키려 했고, 베트남전에서 보여 준 기성세대의 추악한 가치관에 대한 반기로 오리엔탈리즘을 끌어들였다. 라즈니쉬와 라비 샹카르는 바로 그런 오리엔탈리즘의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렇다면 비틀스의 수많은 히트곡들 중에서 왜 하루키는 하필 「Norwegian Wood」를 찾아냈는지에 대한 의문에 답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그는 이 곡이 1960년대의 어느 날을 떠올리게 하는 데 가장 정확한 시대성을 담고 있다고, 또 한 곡의 가사가 전달하는 허무함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향한 향수를 불러내기에 적절함을 넘어선 더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Norwegian Wood

 

I once had a girl
Or should I say she once had me
She showed me her room
Isn’t it good Norwegian wood?

 

She asked me to stay
And she told me to sit anywhere
So I looked around
And I noticed there wasn’t a chair

 

I sat on the rug biding my time
Drinking her wine
We talked until two and then she said
“It’s time for bed”

 

She told me she worked
In the morning and started to laugh
I told her I didn’t
And crawled off to sleep in the bath

 

And when I awoke I was alone
This bird had flown
So I lit a fire
Isn’t it good Norwegian wood?

 

하루키는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비틀스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한 친절한 도우미를 마련해 놓았다. 주인공 ‘나’는 불안정한 정서를 치유하기 위해 요양원으로 들어간 나오코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중년의 여인 레이코를 만난다. 어쿠스틱 기타를 든 채, 그녀는 ‘나’에게 말한다.

 

“나오코가 오고부터 날이면 날마다 비틀스를 쳐야 해. 꼭 불쌍한 음악 노예처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미셸(Michelle)」을 아주 멋들어지게 쳤다.

- 본문에서

 

비틀스의 곡들 중, 최초로 두 개의 언어가 들어간 「Michelle」은 폴 매카트니가 한 파티에서 만난 프랑스 학생의 불어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처음엔 미완성의 멜로디에 불어를 흉내 낸, 그러나 의미 없는 흥얼거림으로 이루어졌던 이 곡은 존 레넌의 부탁을 받은 친구의 아내가 프랑스 이름인 ‘미셸’과 각운을 맞춘 ‘Ma Belle’을 한 문장에 넣음으로 완성된 곡이다.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은 곡 「Michelle」은 소설 속에서 마치 사랑스런 나오코의 테마곡처럼 등장한다. 어쩌면 불완전한 정신을 가진 나오코처럼 흔들리던 1960년대였지만, 하루키는 “나의 아름다운 미셸, 사랑해요.”라는 「Michelle」의 가사를 통해 헌사를 바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충실한 내레이터로 레이코는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있다.

(사족이지만, 몇 년 전 이 곡은 백악관에 초청된 폴 매카트니가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를 위해 부르기도 했다.)

 

Michelle

 

Michelle, ma belle.

These are words that go together well, my Michelle.

 

Michelle, ma belle.

Sont les mots qui vont tres bien ensemble, tres bien ensemble.

 

I love you, I love you, I love you.

That’s all I want to say. Until I find a way

I will say the only words I know that

you’ll understand.

 

I need you, I need you, I need you.

I need to make you see, oh, what you mean to me.

Until I do I’m hoping you will know what I mean.

I love you.

 

I want you, I want you, I want you.

I think you know by now I’ll get to you somehow.

Until I do I’m telling you so you’ll understand.

 

I will say the only words I know that

you’ll understand, my Michelle.

 

레이코와 친해진 ‘나’는 그녀와 커피숍에 간다. 그곳의 종업원은 레이코에게 부탁한다.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을 들려주면, 우유를 서비스로 주겠다고. 레이코는 곧 이 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소설 속 이 장면만을 떠올리면, 주인공 ‘나’는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 어쩌면 그러길 바랐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루키는 이 근거 없는 희망의 배경에 비틀스의 「Here Comes the Sun」을 배치한다. 비틀스가 끊임없는 의견 대립으로 해체의 수순을 밟아 가던 때, 조지 해리슨은 자신의 친구였던 에릭 클랩튼을 찾아간다. 1969년의 겨울 해를 받으며 산책을 즐기던 조지 해리슨은 에릭 클랩튼의 정원에서 기타를 들고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햇빛을 받고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그때 저절로 이 노래가 떠올랐다.”

하루키 역시 1960년대가 그러하길 바랐을 것이다.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Little darling, it’s been a long cold lonely winter
Little darling, it feels like years since it’s been here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Little darling, the smiles returning to the faces
Little darling, it seems like years since it’s been here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Sun, sun, sun, here it comes
Sun, sun, sun, here it comes
Sun, sun, sun, here it comes
Sun, sun, sun, here it comes
Sun, sun, sun, here it comes
Little darling, I feel that ice is slowly melting
Little darling, it seems like years since it’s been clear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and I say
It’s all right

Here comes the sun,
Here comes the sun,
It’s all right
It’s all right

 

소설의 후반부, 나오코가 떠난 자리에서 레이코와 ‘나’가 함께 비틀스의 음악을 듣는다. 정확히는 레오코가 연주, 노래하고 주인공 ‘나’가 듣는 것이다. 레이코는 비틀스의 노래를 쉬지 않고 쉰 곡을 치며 노래한다.

 

그녀는 한숨을 돌리고 담배를 끈 다음 기타를 들고, 「페니 레인(Penny Lane)」을 치고, 「블랙 버드(Black Bird)」를 치고, 「줄리아」를 치고, 「웬 아임 식스티 포(When I’m Sixty-Four)」를 치고, 「노웨어 맨」을 치고, 「앤드 아이 러브 허(And I Love Her)」를 치고, 「헤이 주드(Hey Jude)」를 쳤다.

-본문에서

 

한 편의 소설이, 아니 하나의 시대가 끝나 가는 자리에서 하루키는 자기 시대의 상징인 비틀스의 음악을 끊임없이 불러낸다. 1960년대의 마지막 해인 1969년 해체되어 버린 비틀스를 통해 자신의 시대도 지나갔음을 종언하는 듯 들린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말로는 드골의 장례식장에서 쓸쓸히 선언했다.

“그가 감으로 나의 시대도 끝났다.”

쉬지 않고 쉰 곡의 비틀스 곡들을 숨 가쁘게 치는 레이코의 모습은 하루키의 마음을 전달해 주는 듯하다. 물론 주인공 ‘나’의 마음까지도.

 

무라카미 하루키는 온전히 1960년대의 아이다. 그의 첫 작품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다는 것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신할 수 있다. 또 다른 1960년대의 아이콘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처녀작의 표지에 새겨 놓은 것이다.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린 회상과 추억을 통해 지나간 ‘그 시대’를 되살려낸다. 하루키에겐 비틀스가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다르지 않다. 비틀스의 음악이 언제든 라디오와 MP3를 통해 들려온다면, 어제의 시간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라고, 하루키는 비틀스를 통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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